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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년회와 송년회

Black cow 1 1529
망년회와 송년회의 차이
12월도 절반 가까이 지나가고 이제 올 한 해도 몇 일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인한 결과인 달력은 권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력을 쓸 것인가, 음력을 쓸 것인가, 단군 기원 년호를 쓸 것인가, 왕이나 황제의 즉위 년호를 쓸 것인가는 권력에 의해 결정이 되지요.

게다가 한 해의 시작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모두 달랐습니다. 전근대 시기 한국-중국-일본에서는 음력 정월 초하루가 새 해의 첫날이었습니다. 반면 중세까지 로마교황청에서는 예수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이 새 해의 첫날이었고, 중세 유럽에서는 보편적으로 성모 마리아의 수태고지 축제의 날인 3월 25일부터 새 해가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비잔틴 세계에서는 9월 1일이 새 해의 첫날이었고,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동지를 새 해의 첫날로 삼았던 문화권도 있었습니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신성한 시간과 신성한 공간이 세속적인 시간과 공간과 분리되고 특권화되어 있었습니다. 이사하기 좋은 날이라든지 종교의 성지 같은 특별한 시간과 공간은 지금까지도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해마다 연말이면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창회, 사회단체 등을 가리지 않고 \'송년회\'를 합니다. \'망년회(忘年會)\'라는 말이 일제의 잔재라고 하여 \'송년회(送年會)\'라는 말을 새롭게 만들어서 널리 쓰고 있지요. 그러나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될 수 없듯이 여전히 \'송년회\' 풍습은 일본의 \'망년회\'와 같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상당히 오랫동안 \'관습화\'된 이러한 풍습을 당장 바꾸기가 쉽지는 않으며, \'오래된 관습\'은 그것의 출처가 어떠하든지 \'전통\'이 되기도 합니다.

\'망년(忘年)\'이란 일년 동안의 노고를 모두 잊는다는 뜻이지요. 일본에서는 1,400여 년 전부터 망년 또는 연망(年忘)이라 하여 섣달 그믐께 친지들끼리 어울려 술과 춤으로 흥청대는 세시 민속이 있었으며 이것이 망년회의 뿌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망년회를 시작했는지는 확실히 모르나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에 부산, 원산, 인천의 항구를 개항하고 서울에 일본인 외교관과 상인들이 거주한 이후라고 생각합니다.

\'망년회\'라는 단어를 처음 등장한 것을 본 것은 1899년 11월 1일자 [독립신문]의 \'외보/외국통신\'에 \'맹아 망년회\'라는 기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 기사의 내용은 \"일본 동경 맹아학교에서 공부하는 판슈와 벙어리들이 금년 12월에 망년회를 할터인데 기시에 일본 동궁전하께서 구경 하실터이라더라.\"는 짧막한 외신 소식이지요. 우리나라에 맹아학교가 처음 세워진 것은 식민지 시기인 1911년인데, 일본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전에 맹아학교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11년에 종로구 신교동의 선희궁터에 제생원 맹아부가 들어섰고, 현재도 그 자리에 맹학교와 농학교가 자리잡고 있지요.

그 이후 1907~1910년 사이의 [대한매일신보] 기사를 보면 망년회가 일상 생활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07년 12월 29일자에는 \'실컷논다\'는 제목으로 \"지금 년종에 내외국 관리들이 망년회니 다화회이니 전별연이니 만찬회이니하는 형형색색 의회가 빈범함으로 일본 료리집들은 크게 리익을 보았는대 엇던대는 일만수천원식 남겻다더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1908년 12월 15일자의 \'망년회 발기\', 1909년 1월 1일자의 \'장씨망년회\', 1909년 12월 18일자의 \'망년회한다\', 1909년 12월 25일자의 \'망년회하자고\', 1909년 12월 28일자의 \'일인기자망년회\', 1909년 12월 28일자의 \'국장의 망년회\' 등의 기사에서 일본 풍습인 망년회가 서울의 권력층과 지식층에 널리 퍼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 [대한매일] 1910년 1월 1일자 \'보호도 많다\'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거월(지난 12월의 뜻) 29일 하오 일시에 일진회원들이 그 본부안에서 망년회를 설행하였는데 헌병과 보조원 수십명을 청구하야 그 본부를 보호케하엿다더라.\"는 비판 기사를 싣고 있습니다. 나라가 거의 망해가는 시기에 친일파 집단인 \'일진회\'는 헌병들의 \'보호\'를 받으며 망년회를 했음을 알 수 있지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망년(忘年)\'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우리나라에서 \'망년(忘年)\'은‘나이歲)를 잊는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 사람의 재주나 인품을 보고 사람 사귀는 것을\'망년지교(忘年之交)\'라 했지요. 같은 한자어 \'망년(忘年)\'이지만 조선과 일본에서 쓰임새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우리의 옛 연말 풍습은 수세(守歲)라 하여 섣달 그믐날이면 방과 뜰,부엌, 변소와 뒤뜰까지 온 집안에 불을 켜놓고 잠을 자지 않으며 조왕신의 하강을 경건하게 기다렸습니다. 부뚜막을 지키는 조왕신은 1년 내내 그 집안 사람들의 선악을 낱낱이 지켜보았다가 섣달 스무나흗날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보고한 다음, 섣달 그뭄날 밤에 다시 내려오는 것으로 생각했지요.

또한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 밤을 \'제석(除夕)\' 혹은 \'제야(除夜)\'라고 불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빚이 있는 사람은 새해가 오기 전에 모두 갚았으며, 남에게 받을 빚이나 외상이 있는 사람은 섣달 그믐날에 찾아다니며 받았다고 합니다. 섣달 그믐날 빚을 받지 못했을 때는 정월 대보름까지는 빚독촉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요즘 신용카드 회사나 은행들도 이러한 \'전통과 관습\'은 좀 배웠으면 좋겠지요?

망년회와 송년회의 역사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개인이 느끼는 송년회의 의미도 또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올해의 송년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매년 술에 찌든 추억만 만들지 말고 올한해를 되돌아보고 새해의 새로운 설계를 할수 있는 유익한 모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개인의 건강과 영양군의 발전을 위해서 !!!!!!!!!! (종은글 스크랩 했습니다)



1 Comments
우리모두 07-12-24 09:48:49  
식당에서 불고기류 일인분만 드셔서 공금을 절약하고 뱃살이 없도록 하는데 신경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