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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배반

상큼한 배반 0 1127
세 번이나 펼쳐진 환희에 찬 거스 히딩크의 어퍼컷을 바라보는 네덜란드 국민들의 심정을 어땠을까. 10년 전 자신들을 월드컵이라는 최고 무대에서 4강까지 이끌어주었던 명장이 이번에는 조국을 향한 어퍼컷을 날렸으니 말이다.

결국 히딩크는 경기 전 자신의 희망대로 조국 네덜란드의 역적이 되고 말았다. 20년 만의 유로 정상을 꿈꾸던 마르코 판 바스턴과 네덜란드를 결과뿐만 아니라 경기력 면에서도 완벽히 제압한 히딩크는 ‘뉴 토탈사커’로 무장한 동토의 거인 러시아와 함께 또 다시 마법을 펼쳤다.

토탈사커의 원조인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와 맞선 러시아는 단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네덜란드를 상대로 지금까지 유지했던 방식(공격축구)을 고수하겠다”던 히딩크 감독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 그대로였다.

러시아는 앞선 그리스, 스웨덴전보다 또 한번 진일보된 플레이를 보여줬다. 하프라인 위에서부터 시작되는 전방위 압박. 한 명을 제쳐내도 금새 따라 붙는 협력 수비. 언제나 상대보다 1-2명이 많은 빠른 공수전환. 어떤 선수가 공간으로 파고 들어도 만드는 정확한 패턴 플레이. 여기에 공간이 생길 경우의 유기적인 커버링까지 러시아의 축구는 흠잡을 것이 없는 완벽한 축구, 새로운 토탈사커의 등장이었다.

무엇보다 수비의 불안을 공격의 강화로 극복시키는, 히딩크만이 할 수 있는 대담한 발상의 전환이 키 포인트였다. 히딩크 감독은 “수비가 불안하기 때문에 더 전방으로 올라가야 한다”며 자신들의 약점을 봉쇄하는 전술의 모토를 설명했다. 그 전술은 상대의 약점을 찾아 철저히 공략하는 히딩크식 축구가 첨가되며 더 완벽해졌다.

경기 내내 러시아는 안드레이 아르샤빈, 로만 파블류첸코, 유리 지르코프를 앞세워 끝 모르는 공격 축구를 펼쳤다. 후반 1-0 리드 상황에서도 히딩크 감독은 디니야르 빌야레티노프, 드미트리 토르빈스키 같은 공격적 성향의 선수를 투입했다. 애초부터 지키는 축구를 할 생각은 없었다는 얘기다.

후반 41분 뤼트 판 니스텔로이에게 헤딩 동점골을 내주며 다 잡은 승리를 놓쳤지만 히딩크와 러시아의 거센 공격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결국 교체 카드인 토르빈스키가 2-1로 다시 앞서는 결승골을 넣었고 종료 직전에는 아르샤빈이 추가 골로 네덜란드를 확인 사살했다.

체력적인 면에서도 러시아는 경기 내내 우위를 유지했다. 히딩크 감독은 90분을 넘어 12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는 팀을 만들기 위해 지난 1, 2월 러시아 축구연맹과 자국 클럽들의 협조를 얻어 선수들을 소집해 안탈리아에서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실시했다. 2002년 한국에서 일으킨 기적과 비슷한 길을 걸은 셈.

혹자는 2000년대 들어 네덜란드 축구의 부진을 일컫으며 토탈사커의 사망을 선고했다. 네덜란드는 유로 2008 죽음의 C조를 3전 전승으로 통과하며 토탈사커의 사망은 일렀음을 알렸다. 하지만 진짜 토탈사커를 보여준 것은 아이러니하게 네덜란드 감독 히딩크가 이끄는 러시아였다. 20년 만에 메이저 무대 8강에 오른 러시아는 ‘뉴 토탈사커’를 앞세워 1988년 눈 앞에서 네덜란드에게 내줬던 우승 트로피에 한발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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