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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에 관한 詩 한편

더불어숲 0 1118
은행나무

- 곽재구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 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 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벗은 가지 위 위태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집 몇 개

때로는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가

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

다시 이 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수천만 황인족의 얼굴 같은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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