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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시간: 2009년11월24일 21시39분    사무국장   홈페이지: -   조회 : 2258  
 저는 이렇게 살았습니다...(펌)

저의 올해 나이는 32세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때 저희 가정형편은 매우 안좋았습니다.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은 제법 많았었지만 아버지가 모두 탕진하셨기 때문입니다.ㅠㅠ

그때부터 우리집의 형편은 피폐해졌고, 가족을 버리고 떠날까도 고민하셨던 어머니는

술고래인 남편 아래 남겨질 저희 남매들을 두고 차마 떠나시질 못했고, 그때 이후로 죽기살기로

장사에 매진하신지 15년여가 흘러 우리 가족은 고향땅을 떠나 부산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서는 아니었고, 농사지을 땅이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막내인 저는 6살즈음에 누나들이 미리 가있던 부산으로 부모님을 따라 오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홀로 장사로 번돈 500만원으로 조그만 집을 매입하셨는데 빚을 2천만원이나 떠안고 장만하신거였습니다.(차후 자라서 알게됨)

지금 생각해보면 누가 보더라도 제정신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과감한 결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럴만 하셨더라구요. 그 돈으로는 변변찮은 전세를 얻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하는 수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내리신 결정이셨습니다.

말그대로 빚더미위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생활이었습니다. 새마을금고에 26년전 당시 금액으로 월33만원정도를 갚아나가야 했으니까요

아버지는 평생 농사만 지으시다 난생처음 도시생활을 하게되어 직장생활도 못하시고 그전보단 나아졌지만 폭음은 여전하셨습니다.

어머니 홀로 버셔서 가족 모두를 부양하고, 원금에 이자까지 은행빚도 갚아나가야하는 상황이었지요.



제가 초등학생때로 기억합니다. 어느날 문득 자고 계시는 어머니를 바라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왠일인지 두손이 꼬옥 쥐어져 있는 겁니다. 어린 저로서는 그게 이상하게 보이더군요.

뭔지 모르게 편안하게 보이질 않는겁니다. 그래서 손을 펴드렸는데 그것도 아주 잠시, 이내 다시 주먹이 쥐어지더군요.

그 순간 저는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습니다. 이유인즉 평생에 한번도 학교를 다녀본적 없는 어머니로선 암산은 물론이고,

계산기를 할 줄도 모르셨고, 장사를 하시면서 셈은 해야겠고, 하는 수 없이 장사하시는 동안 하루종일

손가락으로 계산을 하시다보니 손이 제대로 펴질새가 없었던 겁니다.

매일밤 온몸이 아파서 앓는 어머니 곁에 누워서 자던 저는 밤이면 베겟잎을 흠뻑 적시며 소리없이 울기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너무나도 가여워서였습니다.(어머니는 추후 독학으로 한글을 아주 기초정도로만 스스로 깨우치셨습니다.)



저의 초등학교 시절의 용돈은 한달에 단돈 200원이었어요. 당시로는 새우깡 두봉지 값이었지요.

친구녀석은 하루에 5백원을 용돈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걔는 그때도 아파트에 살았습니다.(좀 사는편이었나 봐요)

그 친구가 저를 놀리더군요.--: 하지만 왠일인지 저는 그 순간만큼은 아껴쓰는 제가 외려 더 자랑스럽더군요. 수치심따위는 없었습니다.

어느날 이었습니다. 등교를 하려던 찰나, 준비물을 못샀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른 어머니에게 2백원을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어머니가 그날따라 돈이 없으셨나봅니다. 지갑에 돈이 없다는걸 아시고서는 그때부터 온집안을 다 뒤지기 시작하셨습니다.

장농안도 보시고, 어머니 장사할때 쓰시는 장부 가방들도 뒤지시고, 서랍이며, 찬장이며, 옷가지 속도 모두 뒤지시기를 한참....ㅠ.ㅠ

등교시간은 어느덧 늦어만 가는데 활짝 열어재쳐진 현관문 앞에 서있던 저는 아들의 준비물을 못사줄까 전전긍긍하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고개숙인체 통한의 눈물을 삼켜야했습니다. 2백원.....그 돈이 없어서 저는 지금 이러고 있고, 어머니는 온 집안을 뒤지고

계십니다...저는 그때 또 한번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내 반드시 부자가 되리라~!! 돈을 알뜰히 모으고 또 모아서 꼭

이 생활에서 벗어나리라. 그리고 이날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맹세하고 또 맹세했습니다.

그런데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결국엔 낡은 장부가방속을 바깥으로 까뒤집자 그 속에서 2백원이 '짜랑~"하고 떨어지는 겁니다.

어머니는 그러면 그렇지 하시며 기쁜 얼굴로 제손에 2백원을 쥐어주시며 학교 늦겠다며 저를 재촉하셨지만

돌아서는 저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조금 전 상황이 제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당시 저희 집 형편이 이러할진데 어린 저로서도 그 사정을 잘 알기에 부모님께 단한번도 돈달라고 때를 써본적이 없었네요.



제가 중학교 1학년이 되던해에 저는 만년 월 200원의 용돈 생활을 청산(?)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월 2천원으로 올랐지요. 당시 학교 매점에서 파는 과자는 가장 싼게 200원에서 비싼건 3~4백원정도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쫄면 한그릇에 4백원정도였구요. 자장면은 아마 700원정도 했을겁니다.

저는 이날을 얼마나 학수고대했던지 모릅니다.

이제서야 돈을 모을수가 있게 된것입니다. 그때부터 고3때까지 6년간 용돈으로만 모은돈이 약2백만원이었습니다.

이미 성인이 되어 직장을 다니던 누나들이 가끔 친정에 올때 1,2천원씩 줬던 용돈이 큰 힘이 되었지요.

한참 군것질하고, 사고 싶은거 많고, 친구들과 어울려다니며 놀러다니기 좋아할 나이에 저는 이 모든걸 단념했습니다.

오로지 돈을 모아야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중학교 3년동안 매점에 정확히 세번 갔던걸로 기억합니다.

한번은 200원짜리 과자한봉지를 사먹었고(도대체 매점이란데가 어떻게 생겼나 구경차 갔었습니다),

그리고 한번은 친구가 400원짜리 매콤쫄면을 사준다고 가자기에 얻어먹었고,

마지막 한번은 그런친구에게 답례차 매콤쫄면을 사주러 데리고 간게 전부입니다.

하교길에 집에 오는길엔 정말이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분식집이며, 핫도그, 통닭집, 피자집 기타등등...정말이지

저 자신과 얼마나 많이 싸우고 갈등했는지 휴우....지금도 그렇게까지 하라면 못할정도로 지독했었던 저였습니다.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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